신간 '스탠퍼드 인문학 공부'…첨단 기술기업서 성공한 인문학 전공자들의 생생 스토리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굶는 과, 전공 불문과, 역사 사(史) 대신 죽을 사(死) 자를 쓴 사학과.

취직하기 어렵다고 소문난 국문과, 불문과, 사학과 등 대표적인 인문학 계열 전공을 비꼬는 은어다. 전공자 자신도 졸업반이 되면 자조적으로 이런 말이 나온다. 오죽하면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유행일까.

기술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실용 학문을 중시하는 풍토가 확산하면서 인문학이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기업이 이공계나 경영 관련 학과 출신을 선호한다는 인식 때문에 인문학 기피 현상은 갈수록 심해진다.

서점가에선 인문학 관련 서적이 아직 인기 있고 TV에선 인문학 강연이 심심찮게 편성된다. 인문학이 모든 학문의 기초라는 데 모두 동의한다. 하지만 '공대 안 가면 취직 못 한다'는 인식은 이제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이런 선입견에 정면으로 태클을 거는 책이 나왔다. 인문학도 충분히 '실용적'이고 우량 기업 입사에 불리하지 않다는 주장을 담은 '스탠퍼드 인문학 공부(지식노마드 펴냄)'.

책은 미국 명문 스탠퍼드대 인문학 전공자들이 '첨단'의 상징 실리콘밸리에 둥지를 틀고 승승장구하는 성공 스토리를 소개한다.

실리콘밸리를 상징하는 주요 기술기업에 취업한 인문학 전공자들을 추적해 실제로 인문학이 첨단 기술 분야에서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 자세히 보여준다.

심지어 저자는 인문학 전공자들이 핸디캡을 딛고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게 아니라 인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자신감을 잃고 위축된 수많은 인문학 전공자가 들으면 솔깃할 수밖에 없는 얘기다.

예컨대 역사학을 전공한 제니퍼 오켈만은 '299전 300기' 주인공이다. 300번째 입사 도전에서 찾은 일자리는 의외로 실리콘밸리에 있었다.

종교학 전공자 마이클 크렌델은 30여년 전 대학 재학 시절 '컴퓨터 과학' 분야 한 과목을 이수한 이력으로 프로그래머 자리를 꿰찼다. 크렌델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는 현재 소프트웨어 회사인 라이트 스케일 대표가 돼 있다.

마리옐 무어는 역사학도지만 '맷슨 내비게이션 컴퍼니' 회계 책임자로 일한다. 무어는 사학을 공부하며 얻은 비판의식이 실제 사회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철학을 전공한 바버라 브라운은 샌프란시스코 도시철도회사 관리자가 됐다. 그는 "스탠퍼드에 있을 때 나는 비판적이고 체계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웠다. 이런 능력의 희소가치를 알 수 있는 곳은 대학 밖 현실 세계"라며 "대학에서 이런 능력을 익힌 사람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시장성이 높다"고 말했다.

컴퓨터공학도, 유전공학도와 차별화하는 이들 인문학도의 공통된 경쟁력은 뭘까.

새너제이주립대 경영학 교수인 저자 랜달 스트로스에 따르면 이들은 인문학 공부를 통해 생소한 것을 빨리 배우는 능력, 방대한 자료를 빨리 읽고 핵심을 정리하는 능력, 어려운 상황을 쉽게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비판적 사고력 등을 갖췄다.

기업은 반도체 회로를 설계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는 게 책의 핵심 주제다. 인문학도에 보내는 희망 메시지라고 할까.

안종희 옮김. 359쪽. 1만8천 원.

lesl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