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누구나 아는 역사 속 위인을 연기하는 것은 배우에게 큰 도전이다. 그것도 정면으로 마주하기 힘들 만큼 가슴 아픈 역사 속 실존 인물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조민호 감독)에서 유관순 열사를 연기한 배우 고아성(27)을 19일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났다.

촬영을 마친지 두 달여밖에 지나지 않은 탓인지, 고아성은 촬영 현장을 생생히 떠올리며 인터뷰 내내 코가 빨개질 정도로 눈물을 쏟았다.

고아성은 "평소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소원이었다"며 "시나리오에 유관순의 인간적인 매력이 담겨있어 끌렸다"고 말했다.

'항거'는 여느 전기 영화처럼 유관순의 일대기를 그리지는 않는다.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에서 시작된 만세운동 이후 고향 충남 병천에서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이 서대문 감옥 8호실에 갇힌 뒤 보낸 1년간의 이야기를 그렸다. 일제의 온갖 고문과 핍박 속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은 모습은 물론 고민과 후회 같은 심리적 변화도 담는다.

고아성은 "촬영할 때 기도하듯이 연기했다"면서 "촬영 끝나고 숙소에 돌아와서도 유관순 열사를 생각하며 기도를 했다"고 떠올렸다. 그는 "유관순 열사를 생각하면 성스러움, 존경심뿐만 아니라 다양한 감정이 든다"고 했다.

특히 유관순이 17살 소녀라는 점은 그의 마음을 더욱 울렸다.

"출연을 결정한 뒤에 서대문형무소 갔어요.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을 한 방에 빼곡히 붙여놨는데, 그중에 유관순 열사 사진을 보니 정말 어려 보이더라고요. 또 다른 어린 분들도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교과서에 나오는 위인이지만, 실제 그 목소리나 말투 등은 알 수가 없다. 고아성은 "그와 단 10분이라도 대화를 해봤으면 하는 마음이 절실했다"며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아성은 극 중 3.1 만세운동 1주년을 기념해 유관순이 감옥에서 다시 만세운동을 펼치는 장면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꼽았다.

"그때 제 심장 소리가 마이크에 다 들어올 정도로 긴장을 했어요. 만세를 다시 부를 경우 감옥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다칠 것을 알면서도 책임감을 다시 끌어올리며 행동하는 대목이었거든요."

유관순이 갇힌 8호실 여옥사는 3평 남짓한 공간으로, 스무명이 넘는 여성들이 함께 수감됐다. 다리를 뻗고 앉을 수도 없어 수감자들은 온종일 감옥 내를 빙빙 돌고, 번갈아 가며 한두명씩 잠을 청했다. 영화는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피어나는 여성들 간의 연대에도 초점을 맞춘다. 기생 김향화(김새벽),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김예은), 다방 종업원 옥이(정하담) 등이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고아성은 "모처럼 또래 배우들과 연기했다"면서 "8호실에 갇힌 수감자들을 연기한 25명 모두 극단 단원이나 전문 배우들로 구성돼 호흡을 주고받기가 편했다"고 말했다.

고아성은 고문으로 거의 먹지도 못하게 된 유관순을 표현하기 위해 촬영 중 닷새간 금식을 하기도 했다. 그런 노력 덕분일까. 고아성과 유관순의 얼굴은 마지막에 가서 하나로 겹쳐 보인다.

고아성은 그동안 영화 '오빠 생각' '우아한 거짓말' '뷰티 인사이드' 등과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 '자체발광 오피스' 등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오가며 폭넓은 연기를 선보여왔다.

그는 "이 작품 촬영을 마치고 고흐 전시에 가서 해설을 듣는데, '내가 추구하는 것을 위해 내 삶을 다 써도 좋다'는 이야기가 와 닿았다"며 "내가 연기하는 이유와 비슷한 것 같다"고 웃었다.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