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의 기독민주, 사회민주, 좌파당 등 매년 부스 차려

베를린 당국·경찰 등도 성소수자에 연대감 표시

[※편집자 주 = 열한 번째 이야기. 독일 수도 베를린은 유럽에서 가장 '힙(hip)'한 도시로 부상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냉전체제의 유산을 간직한 회색도시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젊은 예술가들로 인해 자유분방한 도시로 변모했습니다. 최근엔 유럽의 새로운 IT와 정치 중심지로도 주목받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특색 탓인지 베를린의 전시·공연은 사회·정치·경제적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힙베를린'에서는 다양한 문화적 현상을 창(窓)으로 삼아 사회적 문제를 바라봅니다.]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는 올해도 '레즈비언-게이 도시축제'(Lesbisch-Schwules Stadtfest)가 열렸다.

베를린의 대표적인 동성애 퍼레이드인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Christopher Street Day, CSD) 일주일 전에 열리는 축제다.

지난달 20∼21일 이틀간 축제가 열린 베를린의 대표적인 게이촌(村)인 놀렌도르프 지역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주최 측 추산으로 35만 명의 시민이 몰려들어 축제를 즐겼다.

축제 지역의 주요 거리인 모쓰 슈트라세는 거대한 야외 클럽 같았다. 무지개 깃발이 넘실대고 시민들은 어깨춤을 췄다.

현란하고 독특한 복장을 한 이들이 넘쳤다.

골목에는 임시로 마련된 주점이 줄지어 있었다.

그런데 한 골목에는 정치 관련 단체 부스들이 줄지어 차려져 있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소속된 중도보수 성향의 기독민주당, 대연정의 소수파인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 친(親)기업성향의 자유민주당, 진보 성향의 녹색당과 좌파당, 해적당 등이 차린 부스들이었다.

연방하원의 원내 정당 가운데 바이에른주(州)에서만 활동하는 기독사회당,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만 보이지 않았다.

사민당의 청년조직 '유소스' 대표로 당 지도부에 날을 세워 유명세를 치른 케빈 퀴네르트는 축제 중 열린 토크쇼에 참여하기도 했다.

기독민주당은 당내 동성애자 그룹인 LSU가 주도해 부스를 차렸다.

기독민주당은 동성애자 권리와 관련해 보수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2017년 연방하원이 동성애자 결혼을 이성애자 결혼과 법적으로 동등하게 인정한 법안을 처리할 때 기독민주당의 다수 의원은 반대 입장이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는 기독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양심의 문제로 다루겠다"라며 사실상 자유투표를 시사해 법안 처리를 용인했다는 평가도 받아왔다.

현장에서 만난 기민당원인 마르쿠스 슈나이더는 기독민주당의 보수적 가치관과 정책에 동조하기 때문에 당원이 됐다고 했다.

기독민주당 당원 가운데 LSU 회원은 300여 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당내에서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한다.

슈나이더는 "메르켈 총리는 우리의 요구를 많이 들어주지 않았다"면서도 "보수적인 당내 문화 속에서도 동성애자의 권리가 더 중시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LSU 회원들은 부스에서 당원 가입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자유민주당 부스에는 무지개색의 양복을 입은 당원이 캠페인을 펼치고 있었다.

자유민주당 부스에서 나눠주는 팸플릿에는 "자유민주당은 모든 삶에서 자기 결정권을 중시한다"면서 동성애자 권리에 대한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자유민주당 부스에서 만난 당원 베른트는 "동성애 축제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 당이 소수자를 품는 정책을 펼친다는 점을 알릴 좋은 기회"라며 "우리 당이 보수적이고 기업 친화적인 측면이 있지만, 소수자 문제에서는 진보적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사회민주당 부스는 정책 홍보 위주였다. '포용과 평등을 위한 사회민주당'이라는 제목의 팸플릿을 나눠주고 있었다.

사회민주당 당원인 마르쿠스 파우첸베르거는 "사민당의 주택, 복지 정책 등을 알리고 있다"면서 정책 홍보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정당들 부스 인근에는 베를린주(州) 당국 부스가 눈에 띄었다.

부스에 나온 주 관계자는 "베를린이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나왔다"고 설명했다.

'크리스토퍼 스트리트 데이'에서도 정당들은 행진의 한 축을 담당했다. 좌파당 등은 대형트럭을 동원해 성 소수자에 대한 연대감을 표현했다.

'레즈비언-게이 도시축제'에는 매년 경찰도 부스를 차리고 동성애 혐오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펼쳐왔다.

베를린주 통계에서 베를린에 25만 명의 동성애자가 거주하고 있고, 이 가운데 4만명은 65세 이상이었다. 8만 명은 12∼27세 사이다.

베를린주는 팸플릿에서 "헌법과 일반평등대우법(AGG)에 따라 베를린은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진 시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lkb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