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군, 전주시 상대 본안 소송 제기…전주시 유골 안장

(진도=연합뉴스) 조근영 기자 = 전남 진도군과 전북 전주시가 동학 지도자 유골의 연고권을 둘러싸고 법적 다툼을 벌여 그 결과가 주목된다.

진도군과 진도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전주시와 (사)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상대로 한 '유골 인도청구의 소'를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에 7월 말 제기했다"고 25일 밝혔다.

군과 사업회는 5월 말 전주시 측을 상대로 전주지방법원에 '유골 현상변경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이후 이번에 정식으로 본안 소송을 제기했다.

군은 소장에서 "유골이 진도군 출신이라는 점에 의견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며 "장사 등에 관한 법률상 '연고자 조항'이 적용될 수 있다면 원고들(진도 측)은 피고들(전주 측)에 대해 우선으로 연고자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군과 사업회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동학 정신을 기리고 참여자와 후손을 밝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유골을 앞세운 안장과 기념사업 추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유골의 신원 확인과 후손을 밝혀내는 노력이 선행돼야 기념사업이 올바르게 추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1998년 실시한 유골의 방계 자손들의 유전자 검사로는 유골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며 "그러나 20년 이상 지난 지금에는 당시보다 유전자 감식 기술이 비약적으로 향상돼 방계 후손들과 유골 주인이 맞는지를 밝혀낼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는 과학계의 의견도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진도군수가 조선 중앙정부에 보고한 기록인 '선무선봉진등록' 등 관련 기록에 따르면 이 유골의 주인은 진도에서 사망한 조도 출신 동학 지도자인 박중진(朴仲辰)일 것으로 추정된다.

유골은 1906년 목포면화시험장 기사였던 일본인 사토 마사지로에 의해 일본으로 불법 반출됐다. 이후 90년이 지난 뒤인 1995년 일본 북해도 대학 문학부 인류학 교실 창고 정리 작업 중에 우연히 발견돼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이에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북해도 대학과 협의를 거쳐 1996년 유골을 국내로 봉환했다.

그러나 당시 유전자 감식 기술의 한계로 후손을 밝혀내지 못하면서 지난 23년 동안 전주역사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왔다.

이후 전주 측에서 유골을 화장해 묻을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진도군 측은 2015년부터 화장 반대와 함께 봉환 운동에 나서게 됐다.

그러나 전주시와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6월 1일 '전주동학농민혁명 녹두관'에 유골을 안장했다.

진도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는 "전주시 측에서 진도와 단 한마디 상의하거나 사전 연락, 협의도 없이 안장을 강행했다"며 "이는 진도의 입장을 완전히 무시한 부당한 처사로 소송 외에 뚜렷한 대응 방법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유골이 일본으로 불법반출 되던 1906년 당시 유골이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이 바로 진도군이므로 불법으로 해외에 반출된 유골은 원래 있었던 진도군으로 반환되는 것이 사회통념에 부합할 것"이고 강조했다.

사업회는 "이 유골이 진도 출신일 가능성이 높고 진도에서 출토돼 도굴된 만큼 연고지로 돌려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진도군 관계자는 "진도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에서 유골 반환을 적극적으로 요청해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며 "유골에 대한 인도청구가 받아들여지면 DNA 검사를 통해 신원을 확인하고 후손을 찾아 그들의 뜻에 따라 안장 등 기념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주시 관계자는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에서 2001년부터 유골을 수습한 진도 등에 안장을 추진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며 "유골의 신원을 특정하지 못했을 경우 보관, 관리하는 자가 연고자가 될 수 있다는 법률적 조언에 따라 전주에 안장했다"고 말했다.

chog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