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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조성미 기자 = 12월 초순까진 원래 김장의 계절이었다.

60대 이상의 세대에겐 더 빨랐던 연중행사로 기억된다. 추수를 마치고 11월이면 서리가 내리기 전에 밭에서 배추와 무를 따다가 김장을 하는 게 월동 준비의 시작이었다.

요즘은 김장을 늦가을∼초겨울의 연례행사로 치르는 가정이 예전보다 상당히 줄었다.

맞벌이와 핵가족화, 이젠 그조차 넘어선 비혼(非婚)의 확산, '사 먹는 김치'의 발달 등 이유로 수십포기씩 김치를 담글 수도, 담글 필요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10월 전국 소비자 601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3%만 직접 김장을 한다고 답했고, 나머지는 김장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김장을 포기할 때 잃는 기쁨이 하나 있다. 바로 따끈하고 기름진 돼지고기 수육을 갓 담은 김치와 제철을 맞은 생굴과 함께 싸 먹는 맛이다.

배달음식의 발달로 한겨울이든 한여름이든 보쌈을 시켜 먹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갓 절인 배추의 아삭함, 햇고춧가루 향이 풍기는 매큼한 김칫소, 제철 맞아 싱싱하고 단 생굴, 생새우가 주는 김장 때 먹는 보쌈 맛은 확실히 각별하다.

이 맛을 아련한 옛 추억 속으로 떠나보내기가 아쉽다면 소규모 김장에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

예전처럼 품앗이로 사람을 끌어모아 배추 수십포기를 절이고 무 수십 개를 채 썰어 커다란 고무통에 김칫소를 버무리는 과정이 필요 없어진 시점에서 자신의 상황에 맞춰, 먹을 만큼만 김치를 담그는 것.

지난해 통계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집단시설 가구, 군부대 내 거주자 등을 제외한 일반 가구 중 1인 가구의 비중은 27.2%(2017년 기준)로, 가구 수를 기준으로 보면 1인 가구가 가장 흔한 살림살이 형태가 됐다. 혼자 하는 김장, '혼김'도 어색하지 않은 시대다.

식품 산업의 발달은 혼자 사는 사람이든 2인 가족이든 쉽고 간편하게 김치를 담그는 것을 돕는다.

1등 공신은 시중에서 파는 절임 배추라고 할 수 있다.

배추를 사다가 소금에 절여 물기를 빼는 작업은 수십 포기를 절일 때처럼 힘은 들지 않더라도 시간도 들고 초보자의 경우 제대로 절인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워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다.

산지에서 배추를 소금에 절여 소분해 판매하는 것을 활용하면 김장에 드는 품을 크게 줄일 수 있어 이미 많은 가정에서 활용한다.

보통은 10포기 안팎이 들어있는 20㎏, 또는 40㎏ 단위로 판매한다. 10포기만 돼도 4인 가족이 오랜 기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

최근엔 이보다 더 소량 판매를 하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

김장철 절임 배추는 상온에서 하루를 넘겨 보관할 경우 위생지표 균인 대장균군이 증가할 우려가 있어 제품을 받은 당일 바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상온에서 1일 이상 보관했다면 세척 후 사용해야 한다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권고했다.

절임 배추 이용으로 배추 절이는 노고를 줄였다면 김칫소는 직접 만들어보는게 어떨까.

채칼 또는 칼을 이용해 무를 채 썰고 고춧가루, 쪽파, 다진 마늘과 생강, 찹쌀풀, 매실액에 젓갈을 섞는다. 멸치액젓만 넣는 것이 가장 간단한 형태고 멸치진젓, 새우젓이나 각 지방의 다양한 젓갈을 넣어 지역색을 살릴 수도 있다.

생굴, 생새우, 갓은 필수 재료라기보다는 옵션에 가깝지만 기왕 김칫소를 직접 만들어 먹기로 결심했다면 꼭 넣어주는 것이 보람차다. 맛이 배가되기 때문이다. 채를 썬 배는 겉절이에 넣으면 자연스러운 단맛을 내고 아삭한 식감도 보태지만 오래 보관하는 김장김치에는 넣지 않는다. 배추가 삭을 수 있어서다.

황태나 파 뿌리, 양파껍질 등을 우려 육수를 내서 소를 만들면 김치의 감칠맛을 더 높여주지만 혼자 하는 간략한 김장에서는 빼도 무방하다.

절임 배추처럼 김칫소를 인터넷 쇼핑이나 신선식품 배송 업체를 통해 구매해서 배추와 버무릴 수도 있다.

다 사서 하면 무슨 의미인가 할 수 있지만 바쁜 현대인이 노동력을 과하게 투자하지 않고 수육을 갓 담은 김장김치에 싸서 먹을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단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삶은 수육은 직접 만들어야 한다.

돼지 통삼겹살을 먹을 만큼 냄비에 넣고 고기가 잠길 때까지 물을 붓는다. 누린내를 없애주기 위해 양파, 파 뿌리(또는 파 밑부분), 생강, 마늘, 통후추 등 향이 있는 채소를 넣고 된장을 풀어준다.

인스턴트 커피 가루나 녹차 티백, 콜라를 넣는 이들도 있고 맥주나 소주를 넣어 잡내를 잡고 맛을 살리는 방법도 있다.

재료가 한번 끓어오르면 5분가량 팔팔 끓이다 중간 불로 줄이고 20분 정도 더 익힌다. 고기가 많으면 시간이 더 걸린다. 적당히 익은 정도를 확인하려면 고기를 도마 위에 꺼내어 살짝 식으면 표면을 손가락 끝으로 눌러보는 방법이 있다. 물렁물렁하면 더 익혀야 하고 탱탱한 촉감이 들면 잘 익은 것. 미심쩍으면 칼로 잘라 단면을 확인한다.

보쌈 고기를 씻은 배춧잎이나 갓 담은 김치에 올려서 생굴이나 김칫소를 넣어 싸 먹으면 혼자 살거나 친구와 살아도, 대식구가 아닌 단출한 가정이어도 초겨울의 참맛을 혀끝으로 느낄 수 있다. 격렬한 가사노동은 편리해진 시대가 대신해 줄 것이다.

cs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