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터프 '인생의 특별한 관문' 번역 출간

(서울 = 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 꿈에도 그리던 펜실베이니아 대학으로부터 불합격 통보를 받고서도 그 대학에 입학하면 제일 먼저 가기로 한 학교 맞은편 레스토랑의 추천 메뉴를 아직도 가방 속에 넣고 다니는 섀넌 토러스. 내신 평점 만점에 AP 선행 과정 전부 이수라는 준수한 스펙을 갖추고 아이비리그에 속한 코넬대학을 꿈꿨으나 엘리트들 사이에서 치일 것이 두려워 결국은 집 근처 주립대학을 택했지만, 그마저도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입학 취소를 통보해야 했던 킴 헤닝. 학교 성적은 최우수 수준인데도 SAT 모의고사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받아 크게 실망했으나 뜻밖의 계기로 시간당 400달러짜리 '족집게 과외'를 무료로 받은 후 SAT 점수가 수직으로 상승한 덕분에 예일대에 입학하게 된 벤 도머스.

'인생의 특별한 관문'(원제 The Years That Matter Most: How College Makes or Break Us·글항아리) 저자인 교육 전문 저널리스트 폴 터프는 책을 쓰기 위해 이 아이들을 포함한 수험생들, 대학교수들, 사교육 업체와 대입 시험 주관 업체 관계자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여러 건의 교육 관련 연구 논문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저자는 프랑스 사상가 알렉스 토크빌이 기이하게 여겼을 정도인 미국 건국 초기 계층 이동의 역동성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판단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고 만 교육 시스템 때문이다.

저자는 오늘날 미국인의 사회 이동은 10대 말이나 20대 초에 이르는 짧은 시기에 크게 좌우된다고 지적한다. 젊은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인생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물론 대학 졸업장이다. 저자가 인용한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아이비리그와 그 밖의 최상위 명문대를 지칭하는 '아이비리그-플러스' 출신이 30대 중반에 연봉 63만달러 이상의 상위 1% 고소득층에 속할 확률은 20%, 그 아래 '명문' 출신은 9%, 2년제 커뮤니티 출신은 0.3%로 확연히 구분된다. 그리고 같은 대학에 갔을 경우 성공의 정도는 빈곤층이든 부유층이든 큰 차이가 없었다. 요컨대 대학입학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큰 부분이 좌우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부유층과 빈곤층이 같은 대학에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비리그-플러스 대학 학부생 3분의 2 이상이 부유층 가정 출신이고 빈곤층 가정 출신은 4%에 불과했다. 저자는 "미국의 현행 대학 입시 제도는 기회균등과 평등이라는 가면을 쓰고 오히려 예전의 낡은 귀족제를 되살려놓았다"고 비판한다.

잘사는 집 아이들이 명문대 입학을 독점하는 것은 이들이 우수하기 때문일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부유층이 누리는 '문화 자본'뿐만 아니라 사교육의 혜택, 풍부한 입시 정보,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 또는 유지 욕구 등을 이유로 들 수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학, 특히 명문대학들이 부유층 출신 수험생을 선호하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이들을 편중되게 뽑는다는 점이다.

대학들이 신입생을 선발할 때 우선으로 고려하는 요소는 대학 재정이다. 등록금을 꾸준히 낼 수 있는 학생을 뽑아야 적자를 면할 수 있고 부유한 동문이 많아야 기부금 확보에 유리하다. 또 'US 뉴스 대학 랭킹' 등 대학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입학생 SAT 점수가 높아야 하고 합격률(지원자 수 대비 합격생 비율)이 낮아야 한다. 이 모든 요인을 한꺼번에 만족시키는 방법은 많은 지원자를 확보하고 그중에서 '부유층 출신 SAT 고득점' 수험생을 뽑는 것이다. 이런 목표를 가진 대학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SAT와 ACT 등 표준화한 시험은 사교육의 혜택을 누리는 부유층 출신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시험이다.

최상위권 명문대학에 백인 또는 아시아계 부유층 출신 학생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것에 비판 여론이 비등하자 여러 대학과 SAT 주관 기관인 칼리지 보드 등이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눈속임'에 불과한 일부 통계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하버드대학은 2004년 부모의 연 소득이 4만 달러 미만인 학생의 입학을 촉진하기 위해 이들에게 등록금을 전액 면제해 주겠다고 발표해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으나 막상 신입생 1천600명 가운데 빈곤층 학생은 매년 평균 15명 정도 늘었을 뿐이었고 그나마도 대부분 하버드가 아니라도 예일이나 프린스턴에 입학할 수 있었던 학생들이었다. 일부 대학은 SAT나 ACT 성적을 보지 않고 고교 내신 성적만으로 평가해 신입생의 계층 다양성을 확보하겠다는 실험에 나섰으나 그 성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미국의 대학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되기는커녕 기존의 계층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이 현실을 타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루스벨트 대통령 제안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행한 '제대군인원호법'에 주목한다. 제대 군인에 4년간 등록금과 교육 수당을 지급하기로 한 이 법이 시행되면서 미국 대학의 학부생 수는 단박에 두 배로 늘었다. 시카고대와 하버드대 총장이 '대학 교육의 질 저하'를 들어 반대했지만, 결과는 이들의 우려와 정반대였다. 평균적으로 제대 군인들 성적이 줄곧 일반 학생들보다 높았다. 이런 지원 조치가 없었더라도 대학에 입학했을 백인, 부유층보다 소수민족에 가난한 가정 출신의 학생들이 주된 수혜자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저자는 "미국 국민이 지금도 교육의 강력한 힘을 믿는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최근 들어 달라진 점은 사람들이 교육을 국가 전체가 아닌 개인의 측면에서 생각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미국인들이 한 세기 전에는 명확하게 인식했지만, 요즘은 쉽게 외면하는, 하나의 원칙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공교육을 활성화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간단한 원칙이다."

강이수 옮김. 504쪽. 1만9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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